류정 기자 wel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1.06.20 03:02

[프라이빗뱅킹 大戰] [中] 한국의 수퍼 리치, 그들은 누구인가
1만7000여명 중 42%, 강남·분당에… 60~70대 강북 부자는 안전자산 선호
40~50대 강남 신흥 부자들은 회사채·헤지펀드도 빠르게 흡수, 자녀들 금융교육 필수로 여겨

"요즘 우리 동네에서 미술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모집한다던데 그거 알아요?"

서울 강남에 있는 A증권사 지점의 한 PB(프라이빗 뱅커·거액 자산가를 상대하며 자산관리를 조언하는 금융인)는 최근 고객이던 40대 여성 자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고 잘 모른다고 답했다가 그녀의 실망스러운 눈빛과 마주쳐야 했다. 결국 이 고객은 지점에 발길을 끊었다. 이 PB는 "비밀리에 모집되는 펀드였지만 내가 정보에 늦고 고객에 대한 성의가 부족한 PB로 비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요즘 수퍼 리치(Super rich·갑부)들의 발 빠른 정보력과 냉정함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현재 14만명에 달한다는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들. 한국의 수퍼 리치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부(富)를 불리고 있을까.

PB 테스트해보는 '스마트 리치'

우리나라 갑부들은 서울 강남에 몰려 있다. 하나은행 통계를 보면 수퍼 리치 1만7000명의 자산 23조원 중 36%가 강남·서초·송파구에 사는 부자들의 자산이다. 경기도 분당까지 합치면 42%에 달한다. 전통 부자가 많은 용산·종로·성북구는 12%를 차지한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57%)이 절반을 넘고 40~50대 부자가 40%, 30대 이하는 3% 정도다. 중견기업 오너나 건물 상속주가 많고 벤처기업인, 대기업 임원, 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 등 신흥 부자도 상당수다.

연령대가 주로 60~70대인 강북의 전통 부자들은 주로 안전자산을 선호하고 한 번 믿고 돈을 맡긴 PB와 오래 거래하는 편이다. 그러나 40~50대 강남 신흥 부자들은 세계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한발 앞선 투자를 한다.

강지현 하나은행 을지로 골드클럽센터장은 "강북 부자는 고금리 회사채 상품을 소개하면 충분히 설명을 듣고 나서도 '정크 본드(부실채권) 있으면 안 한다'고 거절하지만 강남에선 해외 헤지펀드 같은 새로운 상품도 바로바로 흡수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나 벤처사업으로 부를 일군 신흥 부자들이나 전문직, 해외 유학파 기업인 등 금융 지식이 많은 '스마트 리치(Smart rich·똑똑한 부자들)'들은 PB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정훈 미래에셋증권 WM팀장은 "스마트 리치들은 PB를 만나면 아침에 나온 신문기사나 세계 경제에 대해 화두를 꺼낸 뒤 PB가 알고 있는지 테스트하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그날 시장에 대해 PB와 토론도 한다"며 "특히 금융 지식이 많은 변호사들은 PB를 믿지 않고 오히려 가르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10억원 이상을 굴리는 부자들은 부인에게 돈 관리를 맡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경희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지점장은 "1억~10억원을 맡길 때는 대부분 '사모님'이 찾아오지만 10억원 이상을 맡길 때는 90%가 남자 고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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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 눈뜬 '한국형 유대인'

수퍼 리치들이 관심을 갖는 투자처는 주식에 집중 투자하는 자문형랩(맞춤형 종합자산관리), 브라질 국채나 딤섬본드 같은 해외 국채, 고금리 회사채, 주가지수가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고수익이 보장되는 ELS상품, 수익형 부동산 등으로 다양하다. 최근엔 한창 긴축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중국 기업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하반기부터 중국 시장이 좋아질 것이라고 보고 한발 앞서 움직이는 것이다. 일반 직장인이 주식이나 펀드 정도에 관심을 갖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또 요즘 부자들은 자녀를 위한 금융 교육을 필수로 여긴다. 집안의 부를 유지하고 증식하려면 가업만 잘 승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금융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0대 제조업체 사장인 B씨는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PB센터가 제공하는 각종 금융 세미나에 참석한다. 또 PB를 통해 소개받은 분야별 금융 전문가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인맥까지 쌓아준다.

박경희 지점장은 "PB센터가 주관하는 금융 세미나에 아들딸을 대동하는 자산가들이 많다"며 "공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가정에서의 철저한 금융 교육을 통해 재산을 불려왔던 유대인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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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hite Jo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