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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8 게임중독에 방황 '서울대 자퇴' 하더니…
  2. 2011.06.22 천재 없는 한국 사회, 사기꾼만 넘치는 이유는?

[피플]폴리텍대 남인천캠퍼스 수석, 고용부장관상 수상 성재모 씨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입력 : 2013.02.18 07:19|조회 : 128229

 

어렸을 때부터 수재란 소리를 듣고 자란 학생이 있었다. 학교에서도 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이 학생은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고민만 하던 이 학생은 대학 2학년 때 국가고시를 보기로 맘먹었다. 시험에서 수년간 낙방한 이 학생은 게임중독에 빠졌다. 목표 없는 삶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결국 학교를 그만둔 채 방황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33살의 늦은 나이로 한국폴리텍대학 LED전자과(기능사 1년 과정)에 들어갔다. 폴리텍대는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전문 기능·기술인 양성 학교로, 졸업생들 취업률이 85% 안팎에 이를 정도로 취업명문 학교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현장 실무교육을 배운 그는 알짜 중견기업에 취업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인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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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졸업식에서 전체 수석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한 성재모(남, 34세) 씨 얘기다. 성 씨는 지난 1년간 폴리텍대에서 산업현장과 유사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 받는 등 전문 인력으로 거듭났다. 현재 (주)하이버스 ODM사업부 하드웨어 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성 씨는 "서울대를 다녔지만 그땐 꿈도 없었고 무작정 고시나 보자는 생각으로 허송세월했다"며 "학력보다 실력을 쌓아 취업을 할 수 있었고, 폴리텍대학의 현장 중심형 교육 시스템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가 나온 폴리텍대 기능사 과정은 오로지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 훈련과정으로 1년간 전액 국비(무료)로 운영된다. 직업 훈련을 받은 학생들은 국가기술자격을 취득한 후 거의 취업에 성공한다.

성 씨가 입사한 하이버스는 고성능 임베디드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로 ODM 사업부는 IT임베디드 컴퓨팅 분야 개발 툴을 제조·판매하고 상용 제품 개발부터 양산까지 모든 과정을 다루고 있다.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은 제조업체가 단순 생산만 하는 OEM과 다르게 보유 기술력으로 자제 개발해 생산하는 방식이다.

성 씨가 맡고 있는 업무는 'Exynos4412 개발 프로젝트'다. Exynos4412는 삼성전자 갤럭시3에 들어가 있는 프로그램으로, 안드로이드 개발 플랫폼을 제작하는 것이다.
입사하자마자 회사에서 주요 업무를 맡게 된 이유는 지난해 여름 폴리텍대에서 운영한 현장 실무적응 훈련 덕분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이 회사에서 한 달간 인턴생활을 한 것이다. 그때 실무 경험이 하이버스 입사로 이어졌고, 학교에서 기업 맞춤 훈련을 통해 IT전문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성 씨는 후배들에게 "간판보다 중요한 게 능력과 실력이다. 아무리 겉만 그럴싸하더라도 속이 텅 비어 있으면 아무 소용없다"며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고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하고 노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서른네살에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다"며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게 도와준 폴리텍대학과 열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연구하면서 함께 밤을 새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Reference

http://cnews.mt.co.kr/mtview.php?no=2013021711023350301&type=1&MS2

Posted by White Joker
기사입력 2011-06-20 오전 7:50:58

일 많이 하는 한국 직장인들이 잃는 것 중의 하나가 심심해질 수 있는 여유다. 기계가 사람과 다른 점의 하나는 심심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계는 스위치가 꺼져 작동이 멈추기는 해도 심심해하지는 못한다. 경쟁이 강화사회는 사람들을 생산성에 의하여 판단하기에 바쁘게 일하는 가치만을 강조한다.

심심해질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한 사회일까? 아니면 자신을 잃은 삶을 살아가는 기계로 가득한 사회일 것인가. 창조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일 것인가, 아니면 주어진 프로그램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일 것인가.

한국 사회에는 '글로벌 리더' 또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강박감은 구성원들에게 강도 높은 경쟁의 압력을 불어넣는 일을 쉽게 만든다. 그 결과 과도한 입시 경쟁, 취업 경쟁, 진급 경쟁으로 사람들은 심심해 할 수 있는 여유를 잃는다. 심심함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기계와 같이 공부하고 일하며 살 것을 강요받는다.

'글로벌 리더'를 만들기 위한 강도 높은 경쟁은 창조적인 '글로벌 리더'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복종하는 기계를 만들 것인가?

여덟 사람이 열 사람 몫의 일을 하는 한국 직장인

한국의 직장인들은 세계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직장인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2008년 기준으로 연평균 2256시간 일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직장인의 연평균 노동 시간이 1764시간임과 비교하면 한국의 직장인들은 약 400시간, 또는 1년에 50일 정도를 더 많이 일하는 셈이다.

이는 쉽게 말하자면 OECD 회원국들이 평균 열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을 한국의 직장인들은 여덟 사람이 한다는 것과 같다. (☞관련 기사 : "2020년까지 연간 노동 시간 1800시간으로 감축")

ⓒ프레시안

만약 한국의 직장인이 OECD 평균인 1764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고, 현재 그 부족한 노동 시간을 다른 사람들로 채운다면 현재 한국의 일자리 수에 대비해서 약 28퍼센트 정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일을 적게 하고 그로 인하여 생기는 새로운 일자리를 나누는 데에는 기존 노동자의 임금 하락을 감수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실행이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입장에서는 임금을 낮추는 것은 사람을 내보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1980년대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서 기업으로부터는 노동 시간 단축을, 그리고 노동조합으로부터는 실질 임금 하락을 이끌어내 새로운 직장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관련 기사 : '하루 8시간 근무' 고정관념부터 깼다)

일자리 나누기는 경쟁과 차등화와는 상반된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이 정규직을 얻게 되면 실업자비정규직의 감소를 통하여 저임금 계층의 소득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저임금 계층의 소득 증가는 현재 한국의 극단적 차등화를 둔화시키고, 양극화 문제의 해소에 중요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는 경쟁의 약화로 연결될 것이며,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사회 문제를 해소하는 데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심심해질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이유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승리하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을 경쟁에 바칠 것을 강요한다. 일등을 해야 하고, 실적을 내야만 하고, 진급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직 준비, 실직 준비 역시 게을리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일이 많아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고용 불안으로 정신적 여유도 남지 않게 된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길 때나 진급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하고 외국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남은 시간마저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표는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게 된다. 심심해질 여유가 없는 삶인 것이다. 삶은 일의 연속, 일이 없으면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를 더 해야 하고, 또는 사업 구상을 해야 하는, 뭔가는 해야 한다는 불안과 긴장의 연속으로 심심해지기 힘든 삶의 연속이다.

심심하다고 할 정도의 여유가 구성원에 주어진 사회, 또는 그런 여유 있는 삶이 주어진 사회에서 새로운 창조적인 것이 탄생할 수 있다. 유명한 예술가, 과학자, 발명가, 철학자들의 중요한 작품이나 새로운 이론의 발견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의 내부적 욕구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허락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들이 과도한 경쟁에서 주어진 학업 과제나 업무로 시간에 쫓기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생존의 강박감 아래 생활을 했다면 천재성의 발휘는 고사하고 자신의 진정한 흥미나 욕구를 발견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그들과 같이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현재 강요되는 경쟁이라는 압박 아래에서 그 천재적 재능을 과연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천재적 재능이 있다 하더라고 결국 그것을 죽여야만 살아남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심심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것은 일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는 것이 아니다. 여유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며,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을 더 열심히 한다. 중요한 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추구하는 여유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자 해서 하는 일은 열심히 하게 될 뿐더러 더 많은 보람도 누리게 된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압에 의한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심심할 정도의 여유가 필요한 사람들은 역사상 유명한 천재들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다수의 보통 사람들에게 그러한 여유가 절실히 필요하다.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잡생각 또는 딴 생각도 할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가끔 뒤돌아보고 주위도 한번 살피는 여유는 심심해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 심심해질 수 있는 여유를 잃게 되면 사람은 자신과의 대화, 자녀나 가족과의 대화, 직장 동료, 친구나 연인과의 대화, 또는 자연과의 진정한 대화 역시 잃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꽉 짜인 학업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강요된 일률적인 입시 경쟁의 삶 속에서 얻는 것은 점수와 서열이고, 잃는 것은 심심해 할 수 있는 여유다. 이러한 심심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사색이나 회의의 시간도, 친구나 가족과 갖는 조건 없는 교류도 잃게 된다.

사색의 시간이 박탈된 아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사랑과 친구들 사이의 우정을 주고받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결여된 사회에서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정서적 안정을 얻기 힘들 것이다.

정서적 안정 없이는 에너지가 자신의 내부의 자발적 동기로부터 나오기 힘들다. 세상과 사물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시간이 없다. 강압에 의한 불안감이 동기 유발이 되는 사회는 삶을 어둡게 할뿐더러 성과 역시 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영어 학원, 입시 학원에 보내고, 그들이 하나라도 더 알고 더 배우도록 하고 시험에서 한 문제라도 더 풀도록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자유롭게 무엇인가 흥미를 느끼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기도 하고 또는 엉뚱한 생각일지언정 자유롭게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그들 나름대로 개성에 맞게 크고, 자신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실 심심해 할 수 있는 여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한낱 웃음거리인 한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치가 경쟁과 효율이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성공하여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심심해 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니 실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무한 경쟁 사회, 그리고 경쟁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장해도 성공하기 힘든 사회에서, 그것은 패자가 되는 지름길로 여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글로벌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채찍은 학생들을 입시 경쟁에 모든 것을 바치게 하였고, 한국 직장인들을 세계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글로벌 리더나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같은 슬로건들은 차등화와 경쟁 강화를 정당화하고, 그 결과로 직장인들에게 과도한 업무량의 부과를 용이하게 하여 기업의 이해는 대변하지만,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오히려 학생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 데 방해만 된다.

한국의 학생, 직장인 그리고 기계는 심심해질 수 없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나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태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흥미와 같은 내부적 동기가 없다는 것과 같다. 같은 일은 하더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것과 해야만 되는 것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기계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고장은 날지라도 나태해질 수 없는 것이다. 주워진 프로그램에 따라 그냥 움직이는 것이 기계이다. 이제 우리는 진 자나 이긴 자 모두 심심해 할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다 반납해야 된다. 우리는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한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꽉 짜인 프로그램에 따라야 한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도 우리는 바로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그 여유를 채운다. 심한 경쟁 상황에서 여유가 생기면 항상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경쟁에서 살아남고, 더 나은 성과를 내야 한다. 우리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프로그램과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강요한 프로그램으로 한시도 나태해질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는 생소한 것이 되고, 설사 그런 여유가 생긴다 해도, 심심하기보다 오히려 불안해한다. 일을 더 열심히 하고 또 자기 개발을 더하는 것만이 그 불안감에 대처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만다. 이렇게 한 가지 가치, 경쟁과 성공이라는 그 가치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제 심심할 수 있는 능력을 많이 잃어 버렸다. 그 대신 불안감이 그 자리를 대치하고, 그 불안감은 우리를 더 경쟁적으로 만드는 채찍이 된다.

기계는 나태해질 수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성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존재 의의는 기계 자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프로그램에 따라서 나타나는 생산성과 같은 결과로 평가한다.

우리는 기계와 얼마나 다를까? 우리 역시 거대한 그러나 획일적 가치에 기초한 프로그램에 따라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의 생산성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즉 기계와 같이 우리의 존재 의의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기보다는 물질 획득 능력에 따른 순위 경쟁의 결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한국의 직장인들, 그리고 세계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의 삶은 과도한 경쟁이 강요한 심심해질 수 있는 여유가 거부된 삶이고, 타의에 의하여 작동되는 기계와 마찬가지로 자신이라는 주체가 상실된 삶이 아닌가?

/서상철 캐나다 윈저 대학 교수메일보내기필자의 다른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619222530&sect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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